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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08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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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20년이 다 되었지만...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이나 무슨 특별한 기념 같은 것을 거의 잊고 살았었는데...
물론 결혼 초에는 그런거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기도했지만...
몇해 안가서 제가 더 못챙기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 들어났죠...
그런데
어제 아침엔 멜을 확인하려고 컴을 켰더니 결혼 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보험회사의 멜이 이쁜 꽃바구니 사진과 함께 올려져 있더군요...
싱겁게 한번 웃으며...
'오늘이 우리 결혼 기념일이래.. ㅋㅋ' 옆에 있는 남편에게 농담 한마디 던지고 컴끄고 결혼 기념일이라는 생각도 끄고..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오전 11시쯤~~~
택배가 왔다나요??
우리 집엔 저의 형제님이 복음서원 일도 많이 있고 제가 주문한 책들도 있어서 이래저래 택배가 많은 집이니 별 신경 쓸일도 없습니다.
저의 형제님이 택배를 접수하고...
케이크가 왔는데.. 함께 먹자네요..
뭔 케익!! 학교 기숙사 종강파티하고 남은 케익이 왔어??
엉뚱한 소리만 해대는 저에게 강의실에 한번 나가보라고 남편이 자꾸 등을 떠밉니다.
와~~~ 우~~~
꽃바구니에...
케익에...
아~~
오늘이 우리 결혼 기념일이라고 카드 회사에서 꽁짜로 보내준거예요??
요즘은 참 세상이 좋아졌어!! 또 제가 엉뚱한 말을 합니다(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편 얼굴 한번 쳐다보고 뭔 카드가 꽃바구니에 꼽혀있기에... 열어보았더니...
우~~
별일이네요...
아니 뭔 일이래요??
제가 놀라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도 잊고 전화기 들고 여기저기 전화부터 합니다.
다들 모이셔요
진기한 일이 생겼답니다.
진짜 다들 오셔서 빨랑 저를 축하해주셔야해요..
뭔일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저 와보면 안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2-30분 후
다들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살다가 별 일이 다 있다며... 나이 먹으며 우리는 점점 이렇게 되야한다며...
저를 축하해 주셨습니다.
결혼 기념일을 축하해 주신 것이 아니라...
결혼해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에게 꽃바구니를 받았다는 사실을 축하해 주셨습니다.
나이를 쪼금씩 먹으면서...
깨닫는건데...
자꾸 자꾸 남편이 더 귀하고 옆에 사는 마누라가 더 귀하게 여겨지는거...부인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
지금보다 좀더 어려서는 욕심도 많고 요구도 많고...
교회 안에서도 뭔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거...
그리고
상대가 하는 일이 무엇이던간에..
존중해주고..
서로 도와주고...
인정해주고...
서로 성격도 다르고 추구하는 것도 다르고 원함도 많이 다르지만 말입니다.
나에게
울타리가 되어주고..
지붕이 되어주고...
최고의 지지자가 되어주는 남편...
결혼 초에는 꽃바구니 커녕 꽃 한송이도 받아보지 못했었는데..
내가 그렇게 보라색 소국을 좋아한다고 수다를 떨어도 그런 것을 돈 아깝게 왜 사냐고 구박만 하더니...
와~~우~~
결혼 20년 만에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옆에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커~다란 꽃바구니에... 달콤한 생크림 케익에...
저는 이럴때마다 생각을 합니다.
이쁜짓도 못하고 사는데...
왜 이리 많이 누리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넘칩니다.
주님께...
그리고
남편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