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사랑, 받는 사랑
카페누림글
요셉의창고 , 2010-04-25 , 조회수 (6180) , 추천 (1) , 스크랩 (0)

언젠가 한번 들은 이야기 인데

 

인류의 문명의 발전에 가장 장애가 되는 부분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유인 즉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는데 가장 비생산적이고 가장 비 경제적인 행위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실재적인 활동가운데 많은 시간을 인류는 사랑하는것과 사랑을 유지하는데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부부가 결혼해서 자녀만 낳고 그 자녀들은 국가에서 길러주고 자녀를 양육하고 하는 시간에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된 세상을 만들수 있다는 논리라고 볼수 있습니다.

 

실재로 장래가 촉망되고 유능했던 많은 사람들이,'사랑'이라는 것 때문에 모든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함으로 일생을 허비한 많은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일이든 , 우리가 추구하는 주님이든 상관없이

 그들이 사랑의 대상이 바꿨다면 수많은 일을 해 냈을 것인데

 

 '사랑'하는 대상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일생을 허비하는 것 같은 삶을 산다고 할까......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키우면서 사랑이라는 문제를 가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은 애들이 제법 컸다고,

한 번씩 부딪치는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더 자주 생각해 보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나는 아빠로서 애들의 필요를 최선을 다해 채워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애들을 그것에 전혀 감동을 받는것이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 부족하면 그 부족함에 대한 불만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을 볼때, 세대 차이 이전에 무언가 사랑을 주고 받는 것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 까 하는정도......

 

사랑은 주는것과 받는것이 있습니다.

 

사랑을 주는것과 받는것 중에 어느것이 크게 느껴질까 하는 문제도 생각해 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길 사람은 사랑을 받는것보다 사랑을 주는것을 크게 느낀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가 돌아가셨을때와 자기가 사랑하는 애완동물이 죽었을때 어떤 것에 더 큰 슬픔을 느끼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부모님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재는 자신이 사랑을 주는 애완동물이 죽었을때 더 슬픔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상가집에 가보지만 부모상을 당한 집은 그렇게 슬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실재로 눈물을 본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죽은 초상집이라면 그 상황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그 부모가 손님들과 웃고 이야기 하고 하는 모습을 볼수있을 까요?

 

나의 입장에서 부모는 사랑을 받는 쪽이고 자녀는 사랑을 주는 쪽이니 당연히 자녀의 죽음이 몇배가 아픔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렇게 라도 하고보니 애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아 위안을 느낍니다.

 

몇년전 부산 영락공원에 갔을 때 납골당에 방명록이 있었는데,

 

그중의 짧은 한 문장이 저를 너무나 슬프게 했습니다.

 

" 00 아 !! 아빠가 다녀간다

 

일찍 세상을 떠난 자녀를 찾아 올 때의 심정과 또 한 문장을  적고 돌아서는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한 아빠의 축늘어진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자식이란 어차피 죽을 때 까지 부모속에 있는 단물 다 빨아 먹는 존재라고 생각하자.......


 

애들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왠일인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갑자기 나곤 합니다.

 

2년정도 병으로 고생하시다가 50세에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와 서로의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 한적도 없는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야단맞거나 혼이 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섭섭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 여행에 돈이 없어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중학교때에는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지요.

 

중학교 들어가서 얼마되지 않아 병이 나셨고, 중학교 수학여행도 갈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수학여행 간다고 부모님 허락을 받아 오라고 해서, 분명히 이번에도 갈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이전에 한 약속이 있어 말도 못하시고 아버지가 어렵게 헛기침을 몇번하시고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몸만 안아프면 그 까짓 돈은 아무것도 아닌데 너도 알다시피 ......."

 

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거의 수긍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참을 수 없어 어머니에게 떼를 써서 (당시 수학여행비가 1,200원정도로 기억남) 서울을 갔었습니다.

 

또 한번은 계속 혼자서 집에 하루종일 누워계셔야 하니까 서울에서 누나가 목마를때 드시라고 귤을 한 박스 보냈습니다.

 

그당시 귤 한박스는 아마 누나 일주일 봉급 정도 될 정도로 비싸고 귀했습니다.

 

일년에 한개 먹을 까 말까 하는 귤이 갑자기  한 박스나 있으니 나와 한 학년 위인 막내 누나는 신이 났습니다.

 

학교 갈때 한 개, 학교 갔다오면 한 개,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나와 누나에게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 내가 아파서 너 큰 누나가 고생해서 번 돈으로 사보냈는데  왜 다 먹어 치우니?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무안하기도 하고,  또 속으로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버지 혼자 다 드실려고 그러시네'

 

 하면서 마음이 상했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마음이 상한 것은 이 두번이 기억이 납니다.

 

지금 다시 그 시절도 돌아간다면 당연히 수학여행 간다고 떼 쓰지 않을 것이고,

 

아마 귤은 손도 되지 않을 것이지만 그 때의 내 생명의 수준이 그정도인걸 하면서도,

 

수학여행을 못보내는, 그렇게 먹고싶어하는 귤을 먹지못하게 하실때에 마음 아파하셨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

 

리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애들도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특별히 요즘은 받는것에 있어서 너무나 익숙해 져 있기 때문에 고마움을 알지 못하는 세대 입니다.

 

10개중에 9가지를 해주고 한 가지 못해주는 것에 대해 9가지 해 준것도 아무 의미가 없이 생각하는 세대입니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서 사랑을 받는 것에서 주는 쪽으로 바뀌면서 배워가야 하는 단계라 느낍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셨을 뿐 아니라 그분의 아들조차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철이 없는 아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마음을 다 알수 있을지........


[원본출처] 사랑에 대하여 - 김해교회카페 :: 교회들(http://cafe.chch.kr/gimhae/1271126754&page=1)

 


새사람
2012-02-27 11:19:53   추천
주 예수. 많은 때 그렇습니다. 그러러니 하고 살지요^^
믿음 안에서 주님은 아실거예요.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자제를, 자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사랑을, 형제 사랑에 신성한 사랑을 공급하는 과정에 있기에~
우리가 부름 받았다는 것과 선택 받기를 갈망하는 견고함으로 주님 안에서 온전하여 지기를 구합니다.
아멘!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