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과 지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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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좋아 , 2010-02-20 , 조회수 (6384) , 추천 (0) , 스크랩 (0)

 하나됨과 지역모임

지역교 회에서의 하나됨(unity)은 성령님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됩니다. 하나됨은 획일적인 것(uniformity)이 아닙니다. 인간의 규정들은 획일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됨을 낳지는 못합니다. 성령님께서 이루시는 하나됨의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그러나 이 다양성은 조화 가운데 유지됩니다. 조화는 다양한 소리들을 묶어서 어울리는 화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다양성 자체만으로는 불화를 낳을 수 있습니다. 불화는 영적인 세계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영적인 하나됨으로 묶으려는 육적인 노력이 낳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조화”라는 말의 기본 개념은 꼭 맞는(fitted)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기능면에서 성도들은 건강한 인간 신체의 마디들과 같이 서로 꼭 맞게 설계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인 교회에도 동일합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그리스도께서 이 몸의 머리가 되십니다.

상징의 차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인간 신체를 동일하게 지역교회에 적용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곧 고린도전서에서는 지체들이 에베소서와 같이 머리가 몸과 구분되어 묘사되지 않고, 귀와 눈과 같이 머리의 일부로서 언급되었습니다. 이에 관해 사도는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 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고전 12:27). 원어에는 “몸”이라는 단어 앞에 정관사가 없습니다. 이는 각 지역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간주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각 지역교회는 하나님의 영에 의해 지역적으로 형성된 하나됨을 표현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 머리의 일부로 표현된 지체들을 포함한 각 지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제시된 바와 같은 이러한 지역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 각 지체들이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25절). 이는 지역교회의 상태를 매우 적절하고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영적 하나됨이 성령님의 역사인 반면에, 이 하나됨을 지키는 것은 그분의 권능에 복종한 자들이 얼마나 힘써 지키고자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오직 우리가 서로를 향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때 가능합니다(엡 4:1-3).

지역교회의 지체됨

성도의 편에서는 지역교회를 바꾼다고 해서 에베소서 1장 23절에 언급된 완전한 교회(역자 주: 우주적인 교회)인 그리스도의 (전체) 몸의 지체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전하는 것은 그의 지체됨에 있어서 지역적인 영향을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되시는 몸 의 지체됨에 포함된 모든 것은 그가 어디로 가든지 여전히 사실로 남습니다. 이 땅에서의 환경의 변화가 지체됨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지체됨은 하늘과 땅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몸의 지체라는 이유로 그를 두 장소에 있는 교회의 지체로 여기는 것은 이 사실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성도가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이주할 경우, 동시에 두 지역교회의 지체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편지하면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각처에서 우리 주님 곧 그들과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라고 부언한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진 모든 교회들에게는 본질적으로 공통된 사실과 특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는 지역적으로 지역교회의 하나됨의 증거를 유지하기 위해서 주의해야 할 필요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역교회는 주님께서 각 교회에게 주신 영적 은사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각 교회를 형성하는 성도들은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는 권면을 이행해야 합니다(살전 5:12-13). 이어지는 앞 뒤 구절의 명령으로서 서로 화목하며, 서로 위로하고, 서로 세워주라는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곧 지역교회의 상황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11-13절).

성도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지역교회의 상황은 지역교회에서 하나님의 영의 특권과 인도하심에 복종하며 영적 은사들이 기능을 발휘하는 것과, 무엇보다도 고린도전서 13장에 묘사된 사랑을 실행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권면들과 그 밖의 유사한 권면들은 각 지역교회에서 하나됨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와 몸의 비유를 각 지역교회의 상태에 적용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각 지역교회의 상태란 어떤 지역교회의 성도들이 충족시킬 수 없는 다른 지역 교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의견의 차이

하나님의 눈에 가장 보배로운 성령의 하나됨(시 133편)은 우리가 부지런히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상세한 지침들이 골로새서 3장 12-14절에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러한 일들이 성취되는 곳에는 하나됨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의견이나 판단의 차이가 발생하더라도(우리가 현재 상태의 제한을 받는 동안은 이러한 차이들은 충분히 예상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로 인해 분열이 발생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견해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럴 때 인내를 실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견해의 일치를 보일 때까지는 어떠한 결론에 도달해서도 안 되고 어떠한 조치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며, 형제로서 서로 참고 서로 남을 자기보다 더 낫게 여기며 주님의 마음을 구한다면, 적절한 때에 하나됨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특별히 주어진 명령이 없는 부분에 대해 규정들을 정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유지되어야 할 하나됨을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성경본문에서 미루어 규칙들을 정하는 것은 쉽지만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골로새서 말씀은 사랑을 외투를 묶는 띠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 이 구절 다음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는 권면이 나옵니다. 주님의 화평이 우리의 모든 차이점에서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화평이 각 사람의 마음속에 거한다면 그것은 생각과 행동의 조화로 표현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화평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기에, 지역교회에서 화평이 역사하도록 실행에 옮겨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화평이 은혜로운 권능으로 역사할 때 곧바로 다음에 나오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명령으로 고취된 영을 낳게 될 것입니다.


펀 글:(출처)
http://www.christia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