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동산안에]
카페누림글
민하 , 2009-04-11 , 조회수 (2560) , 추천 (0) , 스크랩 (0)





    제대후 나이 서른때까지 주님께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음악선교단이란것을 하였지요
    교회와 연결되고서는 나의 그것이 참되지 않다는것을 알았고

    이후, 서른에 들어간 첫 직장을 10년
    자동차 부품 제조 자영업 8년,
    이곳 낮선 나라땅이 벌써 3년이 지난 세월,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자동차부품 제조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일들이 생각대로만 된다면 어렵게 살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만은
    매일 새벽 한시두시까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남는 것은 없는 그런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기도집회와 소그룹에서 기쁨을 얻고 힘을 얻고
    또 내일은 오늘 보다는 나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얻고,
    그러기를 몇 년...


    바울의 가시를 위한 기도처럼 자매와 저도 기도를 했었습니다
    사도의 어려움이 몸의 가시였듯이
    저의 가시는 당시의 어려움이었으니까요


    간절함만을 기준 삼는다면 감히 사도의 기도와 비교를 해도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의 그런 간절함이었습니다

    몇 달의 기도중에서 희망이 생기고 무너지고
    또 희망이 생기고 무너지고,,
    그러기를 수십차례..

    그런데 그게 희망과 기대뿐이었습니다

    숨이 컥컥 막히는 어려움과 무너짐은 계속 되고
    30년 넘은 내 신앙의 뿌리까지 흔들릴 정도로 반응이 없는 기도

    나중에는, 이러한 간절한 기도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주님은
    과연 살아 계시는가...

    그 이후 자연스럽게 속에서 부터 생기는 의문..
    왜 이럴까..하는 것이었지요



    몸의 가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도 바울에게서는 감사,
    그러나, 생활의 가시가 그대로 남아 있는 제게는 반항


    자매에게 "이제 기도 안한다 기도하자는 소리 하지마라"는
    반항이었지요. 그런 반항으로,
    기도하자는 자매를 울리기도 몇 차례,
    실제로 근 몇 달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왜 이러지,,?
    반항 가운데서도 생기는 의문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나 나나 서로의 가시가 없어지기를 기도 했었었고
    그리고 동일하게 가시는 그대로 남았는데
    바울은 감사이고 저는 반항이고..



    믿음의 수준, 분량이 다르지.. 하는 이런 것들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교과서적이고 추상적인 모범답안일 뿐
    아~ 이거구나~ 하는 시원함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왜 이럴까 왜 이럴까, 고민하기를 거의 4~5달 정도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어느날,,
    퇴근 길 운전대를 잡은 제게 갑자기 확~ 비춰지는 빛비춤,,

    바로 "목적"이었습니다


    아~~~ "목적"이 달랐구나,,,,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었고
    그래서 몸의 가시가 있든지 없든지 감사할 수 있었고
    나는 몸의 가시가 목적이었구나,,

    그래서 반항이었구나,,

    그래,, 목적이구나,,,
    목적이 달랐어,,,
    그게 목적이었어,,



    ...................................................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오래 전 이러한 빛비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은 성장하지 못하고
    주님이 목적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으며
    "주님~ 당신이 나의 목적입니다,,"하는 고백은
    아직도 참으로 어렵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주님이 목적이 되는 삶,,


    가시가 있든지 없든지

    그리스도로 인하여 환한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

    더 늦기전에 이제는 진정 그런 삶이 되기를 사모합니다

    .................................(글쓴이:동산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