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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9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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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세요!’
jasper 7 자매님께서 제 경상도식 영어라는 말에 퍼뜩 생각난 제목입니다.
한참 몸이 커지고 있는 아이가 하루는 애원을 했습니다.
“엄마, 제발 저들에게 용돈 좀 주시면 안되나요.
도시락 먹어도 배가 너무 고파요.
다른 아이들은 탑샵에서 다 사 먹는데 저는 맨날 얻어 먹어요.”
그리고 생일날에 새 학교 유니폼을 300달러 남짓 들여서 사고 나니 좀 미안 했는지
“저 다른 건 안 바라고요 오늘이 제 생일이니까 햄버거 한 번 실컷 먹게 해주세요.”
그래서 버거킹에서 햄버거 3개를 단숨에 먹어 치우고 엄청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가 너무 심했나 싶기도 하고 새해부턴 용돈을 좀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아무 대가 없이 덥석 몇 달러씩 주기는 좀 그렇고 하여 궁리를 하다가
“규탁이 너 엄마랑 모닝 리바블 하면 1주일에 10달러 줄 수 있다. 은영이는 엄마랑 성경읽기하면 10달러 주고..”
그랬더니 기꺼이 하겠다고 나선 아이와 Morning Revival 책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로 읽을 때는 아이가 영어 교사가 되고
한국어로 읽어 때는 제가 국어 교사가 되면서요.
그런데 소리 내어 읽으면서 ‘L’이 들어 가는 영어 단어만 나오면
긴 쉼표를 찍고 서로 압까지 올려가며
“엄마, 그게 아니예요. ‘골드’는 갖다 버리세요. ‘gold’예요.”
“‘골’이 아니라니까요. ‘goal’이라니까요.”
“‘윌’은 갖다 버리세요. ‘will’이라고 읽으세요.”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가 딱해 보였는지
“야~아, 엄마가 어떻게 너처럼 발음이 되냐? 엄마, 그 정도면 괜찮아요.” 합니다.
그러는 아이들 앞에서 내놓는 저의 푸념..
“차라리 엉터리 영어 아예 배우지 않았으면 더 나았겠다.
‘윌’도 갖다 버리고, ‘골드’도 갖다 버리고 이 엄마가 갖다 버려야 할 게 어디 한 두 가지냐.”
그러면서 턱과 혀에 힘을 빼라는 아이의 주문에 응해도 보았지만
신경을 쓸수록 더 이상한 발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끝내 방학이 끝나면서 아들녀석과 모닝 리바블 함께 읽는 것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안 되는 발음으로 투덜거리는 아이에게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하고,
가르치는 테크닉도 별로인데다
학기 시작되면서 바쁘다는 아이를 계속 제 영어 교사로 두기에는 좀 그렇고 하여서요.^^
그래서 종종 딸아이 몰래 도시락에 2달러 동전을 넣어 주며
‘이건 비밀이다. 점심시간에 뭐 하나 사먹어라.” 합니다.
자식이 배고프다 하니 어쩔 수 없어서요.
딸아이는 먹는 것 보다 사고 싶은 잡화가 많아서인지 아직도 자기 전에 성경 들고 제 옆에 잘 옵니다.^^
이 곳 뉴질랜드에 오면 영어 한은 풀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시간이 갈수록 그 한은 점점 깊어만 갑니다.^^
……
주님, 당신의 긍휼을 구합니다.
갖다 버려야 할 것들 어서 어서 버리게 하여 주옵소서.
굳어진 혀를 풀어 주시고,
굳어진 목도 풀어 주소서.
굳어진 관념들은 다 갖다 버리게 하소서.
날마다 새롭게
순간순간 새롭게
당신 앞에 배우게 하소서.
주님, 그렇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