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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5 ,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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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잡는 高價 해외연수
지난 여름방학에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아들을 7주간 호주로 연수 보낸 주부 김현희(48·서울강남구대치동)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영어만 배우는 연수보다는 여행이나 스포츠도 함께 할 수 있는 연수가 좋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600만원이 넘는 비싼 연수를 보냈지만 아이가 지칠대로 지쳐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오전에 영어공부를 한 뒤 오후 내내 골프와 스쿼시, 수영, 래프팅, 관광 등 벅찬 일정을 소화하고 밤 11시에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반복한 아들은 연수 후반에는 집에 오고 싶다며 울기만 했다. 정씨는 이번 방학에는 국내 영어캠프를 보낼까 생각 중이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어김없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연수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나라와 기간에 따라 연수비용은 200만∼800만원선까지 천차만별이지만 자녀에게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의 심리 탓에 비쌀수록 인기다.
그러나 고액연수 경쟁이 심해지면서 영어 이외에 각종 스포츠와 홈스테이, 현지문화 체험 같은 프로그램들이 마구 추가됨에 따라 녹초가 되거나 따돌림으로 고통받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 여름 뉴질랜드에서 한달간 홈스테이를 하고 돌아온 박모(10·서울성동구옥수동)군은 연수를 다녀온 뒤 한동안 우울증에 빠졌다. 한국학생 4명과 뉴질랜드 학생 6명이 그룹활동을 하는데 그곳 아이들이 박군에게 ‘스터터러(stutterer·말더듬이)’라고 부르며 내내 따돌렸기 때문이다.
박군의 어머니는 “현지 문화를 빨리 익힌다길래 비싼 그룹 홈스테이를 보냈더니 왕따 스트레스만 얻어 왔다”며 “다들 가는데 안 보낼 수도 없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이 무작정 화려한 프로그램으로 무장한 고가 연수를 선호하다 보니 유학원들의 연수상품은 갈수록 빡빡해지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 상품을 취급하는 F연수원 관계자는 “프로그램이 많고 소수정예일수록 신청이 쇄도하다 보니 자연히 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그러나 일부 유학원은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점을 악용해 값을 터무니없이 부풀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동남아 어학연수 업체인 N사 관계자도 “태국이나 필리핀은 상대적으로 싸다 보니 골프나 승마 같은 귀족 스포츠로 단가를 올려야 학부모들이 관심을 갖는다”며 “그런 부가 프로그램들은 한국에서 배우는 게 더 나은데도 부모들의 욕심에 어학연수의 본말이 전도되는 추세”라고 우려했다.
김희균기자
/bell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