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의 신성한 관념
나눔방
사공림 , 2009-01-10 , 조회수 (4352) , 추천 (0) , 스크랩 (0)
 

 

  요한복음 14장은 삼일 하나님과 사람의 합병을 계시하는 너무나 놀라운 장입니다.  이 장에 계시된 신성한 관념은 너무도 깊고 높아서 우리의 타고난 제한적인 관념으로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사람의 놀라운 합병을 계시하기 원하셨지만, 타고난 관념 안에 머물렀던 제자들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두 가지의 중요한 질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주님이 예비하시는 곳, 그 장소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 질문은 그 장소로 가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3절에서 주님은 자신이 한 곳을 예비할 것이고 제자들이 그곳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4절에서는 그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천연적인 사람을 대표하는 도마가 어리석지만 솔직한 질문을 합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도마는 분명히 그 장소와 길을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도마의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단순하지만 너무나 명료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실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가지 못합니다.”  주님의 대답이 분명히 계시하는 것은 그 장소가 바로 아버지이고 그곳으로 가는 길이 다름 아닌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장소도 인격이고 길도 인격인 것입니다.  오, 이것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결국 주님의 뜻은 길이신 그분 자신을 통해 제자들을 아버지 안으로 이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놀라운 합병입니다. 


  8절을 보면 빌립이 도마보다 좀 더 전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은 주님이 길이시고 목적지가 아버지라는 말씀을 듣고는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청합니다.  길이신 주님이 그들 앞에 계셨으므로 빌립은 길보다는 목적 장소인 아버지에게로 관심이 쏠렸고 아버지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 답변하시면서 10절에서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을, 그대가 믿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바로 아들 안에 계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하나의 문제가 생깁니다.  목적지는 아버지 안이고 아버지는 길이신 아들 안에 있다면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아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뿐인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단 말인가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16절부터 계시되기 시작하는 또 다른 보혜사, 즉 실재의 영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 실재의 영은 다름 아닌 부활 안에서 그 영으로 변형되신 아들 그리스도 그분 자신입니다.  이 실재의 영을 통하여 우리는 아들 안으로 들어가고 아들 안에 들어감으로 인하여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에라야 요한복음 14장 20절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  그 날, 곧 부활의 날에 드디어 신성하고도 인간적인, 우주적인, 확대된 합병체가 산출된 것입니다.  삼일 하나님이 사람 안에, 사람이 삼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신성과 인성의 상호 거처입니다.  이 상호 거처가 바로 14장 2절에서 주님이 언급하신 ‘나의 아버지 집’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결국 새 예루살렘으로 최종 완결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가슴이 벅차오르고 인간의 철학과 지혜와 언어는 무색해지고 우린 다만 놀라우신 삼일 하나님을 무릎 꿇고 경배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