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몸 삼분설에 대한 추가적 변증
나눔방
박윤철 , 2008-12-25 , 조회수 (5573) , 추천 (0) , 스크랩 (0)

영­-혼-­몸 삼분설에 대한 추가적 변증

 

회복된 진리 안에서 사람이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진리에 속하며,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체험에서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탄이 덧씌운 관념의 커튼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가련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과 혼과 몸이 왜 구분되며 그 실재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진리적이고 실행적인 내용들은 이미 회복 안의 많은 문서들로 제시되어 있으므로, 저는 제가 추구하는 과정에서 새로 빛 비춤 받은 것만을 전람하고자 합니다.

 

( ◎ 참고로 이 내용은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아직까지 제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회복의 진리를 변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약경륜을 펼치기 위해서 특별히 헬라어를 선택한 것에 관해서는 헬라어 성경을 추구할수록 놀라움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헬라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표현과 용법들(예, 중간태, 디포넌트, 아오리스트 등)이야말로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나타내는데 있어서 그 어떤 언어도 가지지 못한 표현 수단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1. 성(性)의 구분

 

그 중의 하나가 성의 구분입니다. 헬라어는 보통 7개의 품사(명사, 동사, 형용사, 정관사, 전치사, 접속사, 불변사)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서 명사, 동사, 형용사, 정관사는 반드시 성(남성, 중성, 여성)의 구분이 따릅니다.

 

저는 영, 혼, 육의 삼분설을 보여주는 말씀들 중에서 대표적인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 ~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나무랄 데 없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에서 영과 혼에 해당되는 헬라어의 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은 헬라어로 프뉴마(πνευμα)로서 중성명사(neuter noun)입니다. 그리고 혼은 프쉬케(ψυχη)로서 여성명사(feminine noun)입니다. 따라서 이분설이 주장하듯이 영과 혼을 구분치 않고 영혼으로 지칭하는 것은 성이 다른 두 종류를 하나로 합치는 것으로서 이는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치 구약에서 금했던 다른 종류의 육축을 교합하고,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경륜을 거스르고 배도하는 것입니다.(레 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찌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찌며”)

 

이와 같이 이분설을 주장함은 결과적으로 성경의 말씀 자체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진리에 대한 조명의 부족은 물론 영적 실재에 대한 체험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왜 영은 중성이며, 혼은 여성일까요? 저는 이것에도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우리의 영이 중성인 것은 영의 독특성(인격이면서도 기관의 성격을 가진 점)과 관련되는 것으로 바로 과정을 거치고 이제 만유를 포함하는 생명 주시는 그 영(중성명사)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받아들이기 위한 것에 있습니다.

 

둘째, 우리의 혼이 여성인 것은 먼저 이 혼이 우리의 인격(인격은 남성 또는 여성으로 표현됨)의 중심임을 말합니다. 즉 우리는 다른 말로 하면 혼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인격이 여성임은 우주 안의 유일한 남자(스스로 설 수 있다는 의미/ 구약의 ‘여호와’, 신약에서 주님이 자신을 “나는 ~ 이다”라 부르신 것)인 주님과의 관계성에 있어서 우리가 여성의 위치 곧 공급받고 의지하는 위치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와 경륜의 면에서 우리가 창조될 때 혼이 참 남성인 그리스도(우리에게 ‘그 영’으로 공급됨)를 우리의 영 안에서 그리고 영을 통해서 온전히 따르고 순종하는 위치 곧 여성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첫 사람 아담이 범죄 함으로써 우리의 혼은 지금 이를 거스르는 배역의 위치에 있습니다.

 

2. 정관사의 용법

 

또한 위의 구절에서영과 혼과 몸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이το πνευμα και η ψυχη και το σωμα”(토 프뉴마 카이 헤 프쉬케 카이 토 쏘마)인데 각각 영과 혼과 몸에 해당하는 헬라어 앞에 각 단어를 개별적으로 한정하는 정관사 토, 헤, 토가 붙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역시 영과 혼과 몸이 별개의 실재로서 구분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3. 혼과 몸에 관련된 추가적 조망

 

하나님은 카오스의 하나님이 아니고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깊이 들어가면 다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과 권위에 대한 배역에 그 영적 뿌리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영과 혼과 몸에 관한 용어 연구를 하면서 저는 몇 가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삼일 하나님의 표현에 있어 하나님과 아들은 남성 명사로 성령(그 영)은 중성명사로 표현되고 있으며, 사람의 구성과 관련하여서는 우리의 영은 중성, 혼은 여성, 몸은 중성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앞에서 간단히 설명 드렸습니다.

 

특히 우리의 몸은 원어로 쏘마(σωμα)인데 이때 쏘마는 순수한 우리의 구성 성분을 가리키는 의미로서 죄와 연관된 용어인 육체와는 구분되며, 하나님은 이 몸을 귀하게 여기며(자신을 표현하는 성전으로 삼으심) 또한 이 몸이야말로 우리가 천사보다 더 뛰어난 창조물임의 근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쏘마가 중성으로 표현되는 것은 쏘마가 철저히 영과 혼을 온전히 담고 표현하는 입장에 있지 스스로를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이 범죄 함으로 인해 사람은 육체가 되었습니다. 육체는 헬라어로 ‘σαρξ(싸륵스)’인데, 이 싸륵스는 우리의 세 부분 중 혼과 몸과 동시에 연관된 표현입니다. 즉 영, 혼, 몸이 하나님의 통치의 질서 가운데에서 온전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영은 기관은 있어나 죽어 있으며 혼과 몸은 이제 혼합되어 하나의 인격 즉 육체가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모두 이 육체를 따라 삽니다.

 

혼과 몸의 혼합으로서 싸륵스가 인격이 된 것은 성경에서 이 싸륵스가 여성명사로 사용됨을 통해서 증명이 됩니다. 원래는 혼이 여성명사이고, 몸은 중성명사로 있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정상적인데 오히려 이 둘이 혼합되어 이제 하나의 육체로서 여성의 입장(이는 싸륵스가 이제 사람의 인격이 되었음과 그리고 여전히 여성 곧 스스로 설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인간 존재가 혼합과 배도의 입장에 있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런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은 영적 간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 사람이 선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 이 생명을 살고 있습니다.

 

4. 믿는 이들에게 경고가 되는 중요한 표현들

 

혼과 몸의 문제를 다루면서 또한 믿는 우리들에게 매우 경종이 되는 내용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우리에게 매우 엄중한 경고를 주는 말씀들입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혼적인 사람들’ 또는 ‘육에 속한 자’라는 표현에 담겨 있는 내용들입니다.

 

‘혼적인 사람들’과 관련되는 대표적 구절 중 하나인 유다서 19절을 보겠습니다. “이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이며, 혼적인 이들이고 영을 갖지 못한 이들입니다.” (이 구절에서 ‘혼적인 이들’을 개역한글 성경과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육에 속한 자’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원어와 맞지 않는 잘못된 번역이며, 회복역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여기서 혼적인 이들이라고 표현된 사람들은 불신자들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 일어난 변절자들을 가리키고 있으며,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과 관련해서 보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들의 육체가 처리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왜 변절하여 교회에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그것의 해답은 그들이 혼적인 자들이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혼은 원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성 명사로서 온전히 영을 순복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헬라어 원어를 보면 ‘혼적인’에 해당하는 단어로 혼(프쉬케)의 형용사인 프쉬키코스(ψυχικός)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 있는 것은 그 단어가 주격, 남성 형용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영적 의미를 가질까요?

 

혼(프쉬케)는 원래 여성 명사인데, 여기서는 남성 형용사로 그리고 주격으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는 우리가 비록 구원받고 그 분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가 얼마든지 영을 온전히 순복하지 않고 혼을 따름으로써 곧 우리가 스스로 주인이 되어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그럴 때 우리가 혼적인 자(남성의 위치를 취한 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 이것은 얼마나 패역한 것인지! 이것이 간음이며, 영적 문둥병이며, 거역임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혼란케 하고 지체를 아프게 하는 우리의 모든 분열된 입술의 말들이 어디서 나올까요? 자신을 돌아보면 바로 우리가 우리의 혼을 독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여, 우리는 하루 중 단 얼마간의 시간을 당신에게 온전히 순종하여 살까요? 주여 이 패역의 자리에서 우리를 구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혼을 지켜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