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따라..
나눔방
, 2005-08-30 , 조회수 (2276) , 추천 (0) , 스크랩 (0)

이사하는 가정에서 함께 점심을 먹자는 연락을 받고 아침 일찍 김밥을 말았습니다.
참기름을 잔뜩 바른 김밥을 오전 내내 차에 싣고 오전 일정을 마치고 차 문을 여니 참기름집 문지방을 넘는 듯.^^


창문을 활짝 열고 일러 준 주소대로 지도를 찾았습니다.
모토웨이를 지나 빠져 나가는 길에 표시를 하고,
신호등을 몇 번 지나야 하는지 셈을 하고,
길 이름과 집 번지를 다시 익히고,
그렇게 운전을 해 가면 정확하게 원하는 곳을 찾아 갈 수 있습니다.


길 오른쪽은 홀수 번지가 순서대로 이어지고..
길 왼쪽은 짝수 번지가 순서대로 이어지고..
우리 나라처럼 커다란 대문을 가진 집이 거의 없으므로 집집마다 또렷하게 번지가 적힌 편지함이 우리네 문패 역할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외딴 시골집에도 번지 적힌 우편함은 꼭 세워 두고요, 어떤 길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도로공사 비슷한 기관에서는 매번 새로 생기는 길들에 이름을 달고 지도를 업그레드하여 판매하므로 그야말로 지도 하나면 어느 곳이든 정확하게 찾아 갈 수 있답니다.


이런 생활 모습이 참 편리하고 여러 모로 효율적 입니다.
한국에서 새로 이사한 집 찾아 가려면 얼마나 긴 설명이 있어야 하는지..
그것도 모자라 은행 앞으로 혹은 학교 앞으로 마중을 나가야 하고..
요즘은 핸드폰으로 좀 더 수월해지긴 했지만 비싼 통화료가 또 필요합니다.


김정호가 차도 없던 시절에 걷고 걸어 한반도 지도를 그려 낸 것을 보면 우리네 조상도 어느 민족 못지 않게 앞선 면이 있는데….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무얼 하는지?
적지 않은 예산으로 길가에 커다랗게 써 붙이는 현수막들..
중앙청 또는 도청으로부터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행정 계몽 포스터들 선전용 인쇄물들..
그러한 것들이 얼마큼의 효용이 있는지 제 공무체험상으로는 참 회의적이었습니다.
때론 말단 공무원 손에서 쓰레기통으로..
또는 이장네 반장네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는 많은 예산 낭비를 접할 때마다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이제 제발 보여 주기 위한 그런 것들 걷어 치우고 작아 보이지만 정말 편리하고 요긴한 부분들 찾아 내어 국민들 구미에 맞추는 효율적인 행정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꼬!


오랜 옛날부터 고불 고불 걸어 왔던 길들에 우리네 고운 말들 찾아 내어 이름을 붙이고..
어렵고 근엄하게 새겨진 문패 대신 빠짐없이 번지 적힌 작은 편지함 만들어 우체부도 수월하게 하고..
뒷집 아줌마도 옆집 할아버지도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고..


세밀하고 정확한 지도를 웬만한 마켓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고..
누구나 이런 지도 읽을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다면..
시간 절약!
에너지 절약!
경제활동에도 많은 보탬이 되지 않을까?


이삿집을 다녀 오면서 오늘은 문득 이런 생각들을 좀 해 보았습니다.



* 옛날엔 이런 일들 놓고 답답해 한 적이 많았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사실 그런 일들보다 우리의 참 지도인 하나님의 임재가 내 안에 없을 때 정말 답답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