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궂어라~
나눔방
timothy , 2005-08-29 , 조회수 (2330) , 추천 (0) , 스크랩 (0)

두 텀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는 주말이라 유학생 몇을 불러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얼마전 식당 주방장에게 배운 수시(일본식 김밥)를 만드느라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단무지와 맛살은 한국식품점에 가고, 싱싱한 연어를 사기 위해선 생선 가게에 미리 주문을 하여 들러야 하고, 다른 식품은 대형슈퍼마켓식의 식품점에 별도로 가야 하는 장을 보는데 진을 다 뺏습니다. 한국처럼 고만고만하게 가게가 밀집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장을 보는 것이 참 번거롭고 에너지를 많이 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대중을 못해서인지 다들 조금씩 먹어서인지 김밥이며 초밥이 꽤 남았습니다. 아까운 생각에 이웃에게 주겠다고 두 접시를 따로 담았는데 막상 가려니 망설여졌습니다. 미리 연락 없이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자체가 실례가 되는 동네라서요.


그래도 나이든 노인네들은 좀 다르겠지 싶어 용기를 내었습니다.
“수시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아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약간은 미안해 하며 음식을 건넸더니 할머니는 제 얼굴까지 비비며 고맙다고 했는데 와사비를 담은 간장종지를 받아 들고는 하는 말씀 “이 그릇은 나중에 우편함에 넣어 놓으면 되겠느냐?”


‘우편함에? 바로 건너편에 있는 우리집을 지나서 길목 입구까지 가야 하는 우편함에 빈 그릇을 넣어 두겠다고? 애고 참 얄궂다. 그냥 문 똑똑 하면 될 것을…’  - 속으로 한 저의 궁시렁거림 입니다.


사전에 통보 없이 여간해선 남의 집 문을 두드리지 않는 백인들..
이웃에 불만이 있어도, 큰 소리가 나도 여간해서 “왜 그러냐”며 얼굴을 직접 내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옆 집에서 차로(운전 부주의로) 자기네 잔디밭을 손상시켰다며 카운설(구청이나 시청 같은 행정기관)에 전화를 합니다. 그러면 직원이 나와 경고를 하거나 벌금을 청구합니다. 부부싸움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여차 없이 신고를 합니다. 특히 여자의 비명소리는 신고 제 일 호 거리가 되지요.


한 젊은 연인은 차 속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운전하던 차를 세우고 여자는 차 속에서 훌쩍거렸고 남자는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는데 그 또한 여지 없이 신고되어 두 사람이 각기 조회(심문?)를 받아야 했습니다. 여자에겐 어떤 폭력을 받았냐? 보복을 두려워 말라. 우리가 도와 주겠다. 등등의 질문에 두 시간을 넘게 별일 아니었음을 해명하는데 정말 혼이 났다네요.^^


주 중의 저녁 9시 이후로는 특히 이웃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어떤 소란도 허용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금요일 저녁에서 일요일 주말까지는 밤새 드럼을 치고 파티를 해도 괜찮습니다. 법적으로 소란이 허용된 시간이지요.


이런 동네에서 이웃과 도란도란 지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는 모습이 다르고 정서가 다르니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고 오클랜드에 오면 오클랜드법을 따라야 하니 어쩌겠습니까? 그러러니~하며 살아야지요.


오늘 제가 접시 들고 “이 것 좀 드세요.” 똑똑 거린 것은 아마도 오클랜드법 위반일 것 입니다.  - 참 얄궂은 동네~ @^^@ - 이런 면은 한국법이 확실히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