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와 야곱에 대하여 듣다가 한 가지 빛비춤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스스로의 강함을 의지하고 살았던 자이고
능력있고 거친 사냥꾼 이었습니다.
반면 야곱은 약한 자였고 어머니를 의지했으며
아버지의 마음을 만족케 할 큰 능력은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장자권을 얻는 장면에서
야곱이 형에게 떡과 팥죽을 주고 장자권을 가져옵니다.
이 장면에서 야곱이 떡과 팥죽을 주었던 것에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에서는 별미를 아버지께 드려서 기쁘게 했지만
야곱은 볼품 없는 떡과 팥죽이라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타고난 특별한 재능을
그대로 쓰시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약하고 의지하는 자에게 인내와 꾸준함 가운데 키워온
작지만 성실함으로 얻은 결실을 장자권이라는
하나님의 큰 축복을 가져오는데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어린 시절부터
제 자신의 지혜와 머리를 사용해서
그다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사는 것을 즐겨왔습니다.
그런 제가 요즘 영에 눌림이 있어서
무척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많은 소극적인 방면들을 대할 때에
그것들을 통과할 수 없는 제 존재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소극적인 것들은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기쁘게 하는데 있습니다.
모든 적극적인 것들은 그리스도 그분 자신으로서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만을 높이고
그분만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알지만 살지는 못하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머리로는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속에서 체험으로 올 때에는 많이 씁쓸합니다.
그러나 알지만 체험된 것과 체험되지 않은 것의 차이는
몸의 지체들을 만나 교통할 때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 있어서
공급되는 것이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이미 말씀을 자주 추구하셨지만
여전히 말은 어눌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그 형제님이 입만 열면 공급이 있다고들 합니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가르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그의 몸에서 확대한다고 했습니다.
그도 말이 어눌했지만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를 공급하고 분배했습니다.
말뿐인 그리스도가 아니라 존재가 그리스도가 될 때에야
그 사람의 말은 신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용이며,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에 의한 사람이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신언이 될 것입니다.
요즘 이러한 부딪힘에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긍휼하심 가운데 보혈로 덮으셔서
지금은 낭떠러지 은밀한 곳,
바위틈에서 시간을 보낼지라도
언젠가는 그리스도를 풍성히 넘치게 흘러보내는
그리스도의 연인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 건축을 위해
그리스도를 사는 존재를 배우게 하소서.
능력은 거절하고 생명을 보고 알며
누리고 사는 존재가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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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 언약의무지개 형제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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