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깔린 것을 보셨나요?
카페누림글
, 2007-04-16 , 조회수 (2223) , 추천 (0) , 스크랩 (0)

 

        아침에 집회소에 가서 개인기도 시간에 제가 하는 일은 일정치 않습니다. 어떤 때는 그 한 30분 동안을 그야말로 기도(자백하고, 간구하고)만 할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한 두 구절의 말씀을 여러 번 먹을 때도 있고 오늘처럼 성경을 그냥 기도하는 영으로 주욱 읽어 내려가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찬송만을 하거나, 주님의 이름만을 외쳐 부를 때도 있습니다. 어찌하든 존재를 열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또 그분께 아뢰는 접촉의 시간을 갖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출애굽기를 주욱 읽어 나가다가 제 시선이 출23:5에 머물렀습니다. 한번 더 읽고 지나가려다가 이내 다시 머물러서 그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의 당나귀가 짐 밑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거든'... 아 이거봐라 상황이 참 묘하구나 그냥 나귀가 짐밑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니라 '너를 미워하는 사람의 나귀라...' 이럴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보통은 그 사람이 깔려 넘어진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나귀가 그리된 것이니 못 본척 지나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인격은 역시 고상하셨습니다.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 킹제임스 성경은 '삼가 버려두지 말고'를 'wouldest forbear to help him' 이라고 하여 '돕고 싶지 않더라도' 그를 도와 짐을 부리라 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성경 역본들 역시 '그것을 (너를 미워하는 사람의 문제로 남겨 두어) 그냥 내버려 두지 말고'의 의미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법률내용은 그 법률 제정가들의 사상과 사람됨의 어떠함을 반영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 다 사랑하십니다. 그것도 그들을 위하여 그분의 독생자를 내어 주어 죽게 하실 만큼...(요3:16). 그분은 악인과 선인을 차별 않고 햇빛과 비를 그들 모두에게 고르게 내려 주십니다(마5:45).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세리'도 그렇게 할줄 압니다. 끼리 끼리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문안하며 서로 좋다고 오고 가는 것은 '이방인들'도 그렇게 합니다(마5:46-47). 하늘의 아버지는 자신의 자녀들은 그 이상의 미덕을 보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길 원하십니다. 오늘 아침에 이러한 그분의 마음을 한번 더 깊이 만지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최근 들어서 교회 안에 목양이 거듭 거듭 반복되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목양을 하더라도 선호를 따라 선별적으로 하거나 아니면 자기 일에 치여 마음은 원이로되 실행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참으로 참 목자장이신 우리 주님의 이러한 마음을 공유한다면 특별히 어떤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와 삶 자체가 목양일 수 있습니다. 설사 그가 어떤 이유로 서먹해졌거나 나를 미워하거나 내가 미워하는 사이가 되었다 해도 그의 이런 '나귀 깔리는 사건'을 볼 때 기꺼이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준다면 이를 계기로 더 좋은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유에서건 몸의 지체들이나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라도 미워할 권리가 있을까요? '주님 저는 이런 저런 이유로 저 지체가 못마땅합니다'라고 했을 때 '너도 그러냐? 사실은 나도 그렇다. 어쩌면 그렇게 그가 하는 짓마다 내 눈엔 꼴보기 싫으냐 '라고 주님의 맞장구를 이끌어 낼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아니 아예 없습니다). 목양할 대상을 찾아 나서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우리의 치우치고 선호가 있고 이기적이고 병든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를 더 갖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길 가다가 우리를 미워하는 그 사람의 '당나귀'가 짐 더미 밑에 깔려 있어서 어쩔줄 몰라 하는 상황을 만나면 주저없이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 그가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수 있을 것입니다....(갓맨 형제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