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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방 교회가 어떻게 해서 억울하게 이단으로 정죄 되었는지 원인과 과정을 설명하였습니다. 지방 교회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독자들이 ‘재평가 된 지방 교회’를 읽고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 안에서 공정하게 평가해 주기를 바랍니다.
겨울을 이기고 나오는 생명의 달콤함과 풍성함 같이
지체들의 공급을 누릴 때마다 깊은 만족과 신선함이 있습니다.
『교회들 누림글』은 교회들 사이트의 인터넷 웹진으로
지체들이 직접 쓰신 글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
블로그 추천글
교통하는 교회생활이 회복되기를 ― 순수한마음
오늘은 소그룹 가정을 방문을 했습니다.
날짜를 미루고 있는 방문였는데,
자매님이 긴급히 교통을 요청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어제 어떤 사람과 만난 후에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였습니다.
어쨋든 교통도 하고 식사도 하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요즘 교회 생활을 하면서,
어떤 방면은 하락하고 있다고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도 점점 어떤 체계 안에서 동화되고 있다거나
심지어는 마취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많은 섞임과 교통이 필요하고
또한 주님께 나아가고, 말씀으로 나아가
많은 자백과 회개가 필요하며 씻김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그 중 하나가 성도들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교통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을 제쳐두는 것이고,
자신을 멈추는 것이고,
자신이 불충분하고 몸이 필요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려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정의를 모든다고 하더라도
인간사회에서는 토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는 많은 토론(7절)이 있은후에,
베드로의 증언이 있었고 야고보의 결론적인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교통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정작 우리는 교통을 할 줄 모르는지 모릅니다.
토론 조차도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통은,
어떤 보고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도,
자신의 철학을 이해시키는 수단이나 통로도 아닐 것입니다.
몸 안의 지체로서 우리는
생명의 순환 같은 교통이 필요하고,
몸 안에서 한 지체가 몸을 대표하거나
모든 기능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지체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교통한다고 하면서,
한 면으로는 일방적으로 자신의 어떠함을 주지시키려 하고,
다른 면에서는 교통한다고 하면 자신이 낮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저런 절차도 없이 편한 길을 택합니다.
교통 없이 하고, 교통 한다고 해도 내 방식대로 하고,
멈춘다거나 자신을 부인한다는 느낌은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 교통해서 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지체들이 모여서 부족하게 교통을 하고
또한 틀리게 실행해도 거기에 축복을 할 것입니다.
가끔 어떤 소식이 들려 옵니다.
그런데 정작 알고 있어야 할 사람들은 처음 듣는 일입니다.
어떤 지체들은 집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유를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중요한 결정을 혼자 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그것을 내 놓습니다.
교통은 아랫 사람이 윗 사람 한데 보고하는 것이 아니지만,
애써 말하지 않으려 합니다.
교통하는 목적은 다른 사람의 지혜나 꾀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의지하는 것이고, 몸을 관심하는 것이고,
주님의 음성을 함께 듣는 것입니다.
최근 주변에서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큰 문제는 아니지만,
안에서 느끼는 것은 "교통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배우는 것은 교통 할 줄 아는 사람이,
멈출줄 아는 사람이고, 순종하는 사람이고,
동역하는 사람이고, 건축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 주의 회복에 들어와 생소한 단어가 "교통"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자매와 교통해 본다', '형제들과 내일 교통해 볼께요'
정말 교통이라는 말이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교통의 참된 의미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습니다.
얼마 안된 교회생활에서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하는 말들을 적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